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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31:148, Pap XI 1 A 484, 순교, 역사 본문
NB31:148, Pap XI 1 A 484
나 자신에 대하여
한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바로 내가 내 살 속의 가시(Pæl i Kjødet)[i]라고 부를 수 있는 고통(Qval)이었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픔(Sorg), 그리고 사랑했던 어린 소녀(elskede Pigebarn)[ii]와 그와 관련된 일들에 대한 마음의 아픔(Hjertesorg)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내가 꽤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활동 속에서 영의 기쁨(Aands Glæde)을 너무나 많이 느꼈기에, 비록 그것이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Sorg over sin Synd)이라 할지라도, 내가 살고 있는 삶을 고난(Lidelse)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과거의 고난들 위에 생계에 대한 걱정(Sorg for Udkommet)[iii]과 군중의 학대(Pøbel-Mishandling)[iv]라는 또 다른 짐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나는 개념을 왜곡(forfalske)하거나 값싸게 만들지(forjadske) 않고도 내 삶이 일종의 순교(martyrium)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순교(nyt Mynster)일 뿐이다. 내가 공적 인물(offentlig Person)로서 겪는 고통은 마치 거위들에게 짓밟혀 천천히 죽어가는 고통(den langsomme Død at trædes ihjel af Giæs)과 같다.[v] 혹은 먼 나라에서 사용된다는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Smaatteriets piinagtige Dødsmaade), 즉 벌레들에게 던져져 죽는 방식, 그리고 그 죄인이 먼저 꿀에 범벅이 되어(honning indsmurt) 벌레들의 식욕(Appetit)을 자극하도록 하는 그런 죽음과 같다.[vi] 그리고 나의 명성(Berømthed)은 바로 그런 벌레들에게 식욕을 돋우는 꿀(honning)과 같다.
자, 오라! 역사(History)여, 너의 감사(audit)를 시행하라.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여 있다. 게다가 나는 자발적으로 이 위험을 감수했다. 이것은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이다.
[i] 살 속의 가시(Pæl i Kjødet): 이는 고린도후서 12장 7-9절에 대한 암시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큰 계시들을 받은 것이 나를 교만하게 하지 않도록, 내게 육체의 가시(살 속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교만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해달라고 주께 세 번 간구하였으나, 주께서는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셨다.”
[ii] 사랑했던 소녀(det elskede Pigebarn): 이는 레기네 올센(Regine Olsen, 1822-1904)을 가리킨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그녀와 1840년 9월 10일에 약혼했으나, 1841년 10월 12일에 최종적으로 약혼을 파기했다. 이후 레기네는 1843년 8월 28일에 요한 프레데릭 슐레겔(J.F. Schlegel)과 약혼하였고, 1847년 11월 3일에 크리스티안스하운(Christianshavn)에 위치한 우리 구세주 교회(Vor Frelsers Kirke)에서 결혼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과 레기네의 관계를 회상하며 “내가 그녀와 맺었던 관계(Mit Forhold til 'hende')”라는 글에서 이를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이 글은 1849년 8월 24일에 쓰인 것으로, SKS 19의 노트북 15(notesbog 15), 431-445쪽에 실려 있다.
[iii] 생계에 대한 걱정(Sorg for Udkommet): 이 표현은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이 점차 소진되고 있었던 상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그의 일기(NB11:122, 1849년 5월 또는 6월)에서 이러한 경제적 불안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1850년 5월에 작성한 NB18:7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일기에서 종종 “나는 돈을 잃었다(har sat penge til)”고 표현하곤 했다. 특히, 키르케고르는 1848년의 채권 가격 하락(faldende obligationskurser)으로 인해 자신이 약 700 리그스달러(rigsdaler)를 손해 보았다고 여겼다. 이 돈은 1847년 12월에 자신의 어린 시절 집(Nytorv)을 매각한 수익으로 국채(kgl. obligationer)를 구매했을 때 발생한 손실이었다. 반면, 이후 남은 수익으로 구매한 주식(aktier)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내용은 1848년 11월의 NB7:114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쇠렌 키르케고르와 돈(Søren Kierkegaard og pengene)』(78,32) 86~90쪽에서 다루고 있다.
[iv] 군중의 학대(en Pøbel-Mishandling): 이 표현은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풍자 주간지 『코르사렌(Corsaren)』에서 받은 공격과 그 여파를 의미한다. 『코르사렌』은 키르케고르를 집요하게 풍자하고 조롱한 출판물로, 특히 그의 외모, 행동, 사상 등을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비난과 조롱은 키르케고르가 공적 인물로서 사회적 고립과 정신적 고통을 겪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받은 이러한 조롱과 학대를 “군중의 학대(Pøbel-Mishandling)”라고 묘사하며, 이것이 자신에게 심리적 상처와 고립을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v] 거위들에게 짓밟혀 천천히 죽는 죽음(den langsomme Død at trædes ihjel af Giæs): 이 표현은 덴마크 속담인 “거위에게 짓밟혀 죽는다는 것은 느린 죽음이다(Det er en sen død at lade gæs træde sig ihjel)”를 변형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 속담은 E. 마우(E. Mau)의 『덴마크 속담집(Dansk Ordsprogs-Skat)』 1권(1879년) 151쪽에 1560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이 속담을 인용하여, 자신이 풍자 주간지 『코르사렌(Corsaren)』에서 받은 조롱과 비난을 표현했다. 특히, SKS 20의 NB:209 일기(122쪽, 1줄)에서 그는 이 속담을 인용하며, 『코르사렌』으로부터 받은 지속적인 모욕과 공격이 마치 거위에게 천천히 짓밟혀 죽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묘사했다. 이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끊임없는 조롱과 비난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vi] 이 표현은 특정한 명확한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사용한 이 비유는, 고대나 이국적인 형벌 방식처럼, 사람이 벌레 떼에게 던져져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는 처벌을 묘사한다. 특히, 피해자를 꿀(honning)로 덮어 벌레들이 더욱 탐욕적으로 달려들도록 만드는 장면은, 키르케고르가 자신이 대중의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공격받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키르케고르가 느낀 사회적 고립과 『코르사렌(Corsaren)』과 같은 매체에서 받은 끝없는 조롱을 더욱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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