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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23:151, Pap. X4 A155암브로시우스(Ambrosius)

엉클창 2025. 2. 7. 10:21

NB23:151, Pap. X4 A155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사람들은 암브로시우스(Ambrosius)에게 아리우스파(Arianerne)에게 교회를 넘겨주도록 요구했다. 황제(Keiseren)의 사절(使節, Udsendinge)들이 암브로시우스가 머물고 있던 주교좌 성당(Hovedkirken)에 찾아와, 황제의 권리(Ret)에 따라 교회를 내어줄 것을 명령했다. 이에 암브로시우스가 대답했다. 

“만약 황제가 내 개인 소유물을 요구한다면, 나는 결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모든 것이 가난한 자들(de Fattige)의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Gud)이라면, 황제에게는 아무런 권한(Ret)도 없다!”

“너희들이 내 재산(Gods)을 원하느냐? 가져가라! 내 생명(Liv)을 원하느냐? 나는 너희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너희들이 나를 쇠사슬에 묶어(Lænker) 죽이려 한다면, 기꺼이(Vel, med Fornøielse) 그렇게 하라! 그러나 나는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내 방패(Bollværk)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제단(Alterne)을 부여잡고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나는 제단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것이다!”

출처: Böhringer, Die Kirche Christi und ihre Zeugen (1권, 3부, p. 29)

 

📌 📜 역사적 배경:

✔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
✔ 밀라노의 주교(Biskop af Milano), 라틴 교부 중 한 명.
✔ 아리우스주의(Arianisme)와 맞서 싸운 인물.
✔ 황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아리우스파에 넘겨주기를 거부.
✔ 그의 신념과 용기는 후대에 걸쳐 교회의 독립성과 신앙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상징이 됨.


암브로시우스와 아리우스주의자들

 

📌 1. 배경

우리는 이제 주요 사건으로 이동한다. 385년 부활절 주간 이 다가오고 있었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는 황궁으로 소환 되었다. 그곳에서, 모인 국가평의회포르티아나 교회(Portiana)아리우스주의자(Arianere)에게 넘길 것을 요구 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이 요구를 거부했다.

 

📌 2. 황제의 새로운 요구

얼마 후, 종려주일(Palmsonntag, Palm Sunday) 전 금요일황제의 측근 몇 명이 암브로시우스의 거처에 나타나 새로운 제안을 했다. “포르티아나 교회를 넘기지 않겠다면, 도시 내부에 있는 더 크고 새로운 교회를 황실에 양도하라.

암브로시우스는 단호히 거절 하며 대답했다. “사제에게는 주님의 성전을 넘길 권한이 없다.”

 

📌 3. 군사적 압박과 암브로시우스의 저항

종려주일 내내 암브로시우스는 주교좌 대성당 에 머물렀다. 군 지휘관(Feldoberste) 들이 교회로 왔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암브로시우스를 설득하려 했다.

“황제는 단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황제의 것입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황제가 내 소유물(재산과 돈)을 원한다면, 나는 이에 저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모든 것이 가난한 자들에게 속해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 그것에 대해서는 황제가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가 내 유산을 원한다면, 가져가십시오! 내 몸을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나를 포박하고, 사형장으로 끌고 가고 싶습니까? 좋습니다! 나는 기쁨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민중을 방패 삼아 둘러싸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생명을 위해 제단을 붙잡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기꺼이 제단을 위해 희생될 것입니다!”

 

📌 🔎 요약: 암브로시우스의 저항

  암브로시우스는 황제가 교회를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넘기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사제는 주님의 성전을 넘길 권한이 없다.”
  “황제가 내 소유물을 원한다면 주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황제가 소유할 수 없다!”
  “나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내어줄 수 없다.”

 

📌 💡 역사적 의미

이 사건은 교회의 독립성과 황제의 권력 간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이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의 권위를 수호 하며, 국가의 개입을 거부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 이후, 서방 교회는 황제의 통제에서 점차 독립된 위치를 확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