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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NB23:146, Pap. X4 A150금욕(Askese)

엉클창 2025. 2. 6. 14:46

 

NB23:146, Pap. X4 A150

금욕(Askese)

우리 시대(19세기)가 ‘돈키호테(Don Quixote)’에 가장 가깝다고 여길 만한 존재는 아마도 ‘옛날 방식의 금욕주의자(Asket)’일 것이다. 그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심지어 가장 작은 죄악적인 생각에도 스스로를 고발하며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Χstne)’ 아닌가!

만약 누군가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간다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도 곧 이런 이해조차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에게 ‘그냥 공산주의자가 되라’고 말할 테니.) 그러나, 이것은 ‘금욕(Askese)’의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금욕이란 ‘영의 훈련(Aands-Diætetik)’이며, 그것이 개인에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현대인들은 극도로 우습게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Χstne)이라고 자처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만약 누군가 진지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우스꽝스러운 과장(latterlig Overdrivelse)’이라고 여길 것이며, 심지어 ‘미친 사람(anseet for gal)’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의미와 해석

✔ 키르케고르는 19세기 현대인들이 ‘기독교적 금욕’을 얼마나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 그는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실제로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은 비웃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1️⃣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신앙을 실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만, 누군가 진지하게 신앙적 삶을 실천하려 하면 그를 비웃거나 정신 이상자로 여긴다. 이는 ‘형식적 기독교(Nominal Christianity)’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비판이다.

 

2️⃣  진정한 금욕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금욕(Askese)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의 훈련(Aands-Diætetik)’이며, 신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를 단순한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할 뿐, 영적인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3️⃣  진정한 신앙은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진정한 신앙이 단순한 신념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조롱받는다.

 

결론: 키르케고르의 핵심 비판

 

✔ 키르케고르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은 미친 짓으로 여긴다.

✔ 신앙이 단순한 명목상 타이틀이 되어버린 시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가 사라진 증거이다.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

✔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 아니면,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가?

✔ 만약 내가 실제로 신앙을 실천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 키르케고르는 “진정한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그것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