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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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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에서: ***(특이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 문제에 대해 안심시키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그 문제로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Pap. VI B 98:15 n.d., 1845
JJ: 167, JP I 1030 (Pap. IV A 164);철학은 삶을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점에서 완전히 옳다. 하지만 다른 조건을 잊고 있다. 즉, 삶은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록, 시간 속에서의 삶은 결코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이유는 어느 시점에서도 삶을 거꾸로 되돌아볼 수 있는 완벽한 평온 상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철학은 삶을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아마도 카를 다우브(Karl Daub)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며, 키르케고르가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의 작품에서》(Af en endnu Levendes Papirer, 코펜하겐, 1838)에서 삶 속에서 “다우브가 언급한 대로, 삶이 관념을 통해 거꾸..
NB:111, Pap. VII1 A225, 1847.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은 뼈대이고, 뼈의 구조다. 메마른 것이다. 사랑은 완성이다.b) 사랑은 율법의 완성을 회피하지 않는다.―편애(predilection)―감상벽(sentimentality)―아니, 사랑은 진정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게다가 그 이상을 한다.
NB:133, VIII1 A 19선행과 믿음의 관계에 대하여공로를 세운다는 의미의 선행은 물론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선행은 필요하다. 그러나 선행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존재하면도 그들이 중요해진 것에 대해 겸손하게 무지해져야 한다. 선행은 요리가 제공되는 방식 때문에 특별하게 된 접시와 같다. 마찬가지로 선행은 겸손과 믿음으로 섬김을 받아야 한다. 혹은 선행은 자녀가 부모에게 받은 선물로 부모에게 선물할 때와 같다. 선물을 주었다는 데서 생긴 모든 허세는 자녀가 부모에게 준 선물이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 사라진다.
NB11: 187, (Pap. X1 A 489) n.d., 1849루터의 말은 다시 한 번 완전히 옳다. 아무도 믿음을 볼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은 사랑에 의해 알려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데, 성경의 지지를 받는 루터는 이에 반대한다. 기독교적으로 사랑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감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비기독교적인 사랑의 개념이다. 사실 이것은 미학적 정의이며 에로스 등을 잘 설명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사랑은 사랑의 실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내면의 감정, 충만한 마음 등이 아니라, 그분의 삶인 사랑의 실천이었다.
P95:173, Pap. I A 224.괴테는 확실히 아이러니와 유머를 갖고 있었으나, 두 개를 아우른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의 비극과 다르다.1836년 8월 19일Goethe surely has irony and humor, but hovers over both―different, in this respect, from Greek tragedy.Goethe har vel Ironie og Humor; men svæver over begge – forsaavidt forskjellig fra den græske Tragoedie.
NB22:117, Pap. X3 A 739“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자신의 마음을 닫는 사람,”바로 그 순간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닫은 것이다.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마치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리는 것과 같아서, 한쪽을 열지 않고는 다른 쪽을 열 수 없고, 한쪽을 닫지 않고는 다른 쪽을 닫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