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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2:166, Pap. VIII1 A 283 n.d., 1847, JP II 1613 세상은 하나님과 단독자(den Enkelte)의 관계를 자기사랑이라고 간주한다. 세상은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을 참으로 사랑해야만 한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다. 그때 세상은 하나님을 제거한다. 그 결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다. 세상은 하나님 경외를 자기사랑으로 간주한다. 물론 세상과 동시대 사람들이 내린 판단을 신격화하지 않으려는 것, 자신의 최종 심판과 자신의 궁극적 책임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
JJ:87, JP V 5640 (Pap. IV A 76) n.d., 1843 개요 (구약성경이나 코란에 나타나지 않은 내용) 이삭이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갈 때, 그 여행의 목적인 그가 희생제물로 드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오늘날 시인이 본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가면서 한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우선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을 것을 상상해 본다.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고 위엄있는 표정을 하고 다급하게 말한다. 아들 이삭에게 아들의 운명을 인내심 있게 견디라고 권고했고, 아들의 이런 운명으로 인해서 아버지로서 겪는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이해를 시켰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잠시..
. . . . 애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애인의 소원대로 어떤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관계의 예이다.* 즉, 여기에서 하나님은 가장 높은 분이 아니다. 사실상 하나님은 배제되고, 애인의 소원이 결정이다. 그러나 미혹되어 하나님을 망각한 애인이 사랑받고자 하는 유일한 소원, 사랑받는 것이 애인의 유일한 소원인데, 이 애인을 사랑해서 사랑을 포기하는 것,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지 않으려는 것, 애인에게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앗지 않으려는 것,―애인을 사랑하기에―애인과 애인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소원인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애인을 미워하고, 자기 자신도 미워하여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길을 가는 것이 기독교적 사랑의 한 예이다.** 이것이 본질적인 기독교이다. 즉,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과 율법의 완성 사이에 몰래 침입해 들어오는 책임회피나 면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면제를 요구하거나 면제를 주지도 않으며[삭제: 강제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으며], 응석부리지도 응석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아아, 세상에서는 사랑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슬프다. 마치 율법과 사랑 사이에 갈등이 ᄋᅠᆻ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랑 안에 율법과 사랑 사이에는 갈등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Pap. VIII2 B 71:26 n.d., 1847 Pap. VIII2 B 71:26에 이어서; . . . . 먼저 사랑을 지상의 선으로 바꾸고, 지상의 삶을 향상시키고, 쾌락을 높이고, 고통을 경감시키도록 할 때, 그가 처음에 이렇게 했을 때..
Note 13:28, Pap. IV C 50 텐네만의 철학의 역사 5권 302쪽. 진리의 기준에 대한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의심에 대해 그가 내세운 첫 번째 기준은 인간이며,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일깨워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튀폰보다 더 복잡하고 더 사나운 짐승인지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플라톤의 파이드로스 230a 참고).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같은 것만이 같은 것을 안다는 명제를 사용함으로써 회의주의를 일깨운다(308-9쪽 참조). 여기서 내가 나 자신을 아는 것과 같은 정도로 내가 그리스도를 안다는 명제도 매우 중요하다(고전 13:12). [a] 여백에서;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진리의 기준에 대한 교리 υφ’ου ------- ως ανθρω..
NB2:178, Pap.VIII1 A 296, JP III 2926, 1847 . . . . 군중이 그분(그리스도)에게 침을 뱉었다. 그것은 당신을 몸서리를 치게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습관적이고 부드러운 사고방식에 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일은 언급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사건과 동시대인 자신을 상상해 보라. 모든 시선으로부터 조롱을 받고 군중으로부터 배신당한 한 남자의 편에, 공개된 현장에서 그리스도 편에 설 용기가 있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은 거기 있었다! 아마도 당신은 이 사람이 학대받는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군중 속에 서 있었다. 이 불경건한 행동에 가담하는 것은 당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당신 근처에 서 있던..
NB2:22, Pap. VIII1 A 129, (JP I 461, 1847) 인간은 항상 추종자를 얻기 위해 바쁘다. 그것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서둘러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함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추종자를 얻으며, 마지막 순간에 그들을 얻으신다. 그러므로 사람을 따르는 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떨어져 나가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인내한다. NB2:22의 여백에서; Pap. VIII1 A 130 이것이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얻은 방식이었다. 베드로가 부인했던 때에, 즉 마지막 순간에 그를 얻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밤낮으로 떠올릴 수 있는 증인이 필요했다. 베드로가 바로 이 증인이었다. 그 끔찍한 광경의..
JP III 2407 (Pap. VIII1 A 89) n.d., 1847.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를 처음 사랑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가르쳐 주신 우리의 첫 번째 스승이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위해 죽음의 침대가 준비되고 당신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잠자리에 들 때, 당신 주위에 고요함이 커지고, 가까운 사람들이 점차 떠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남아 고요함이 더욱 커질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조용히 떠나고 가장 친밀한 사람들만 남아 있기에 고요함이 더욱 커질 때, 그리하여 마지막 사람이 떠났을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의 침대 옆에 한 분이 계신다. 즉, 처음이신 그분이 남아계신다.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