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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12:13, Pap. X1 A 552, 1849 “교회”는 실제로 “생성(Vorden, Becoming)”을 나타내는 반면, “국가”는 “기성(Bestaaen, the Established)”을 나타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가 함께 성장하고 동일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국가”와 관련하여, 국가는 “기성 질서”의 일부이므로, 아무리 이런 저런 기관이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폐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기성’ 이념의 일부이기 때문이며, 너무 일찍 개혁하는 것보다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기성 질서를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교회’는 정확히 그 반대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이념은 생성이기 때문이다. “생성”은 “기성”보다 더 영적이다. 그러..
NB13:50, Pap. X2 A 119 n.d., 1849, JP I 187 기독교와 사변 [여백에서: 기독교와 사변] 기독교는 존재-소통(Existens-Meddelelse)이며, 권위를 사용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기독교는 사변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실존적으로 계속 움직여져야 하며,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야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폭동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토 달지 말고, 비켜!”라고 말한다. 왜 토 달지 말라고 하는가? 그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기독교에는 객관적인 것은 없는가? 혹은 기독교는 객관적인 지식의 대상이 아닌가? 정말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인 것은 그가 말하는 것이다. 그가 곧 권위이다. 그러나 토를 다는 것, 논쟁하는 것, 이러한 어..
NB11: 209, (Pap. X1 A 517) n.d., 1849 “요하네스 클리마쿠스와 안티 클리마쿠스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은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는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여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말하는 반면, 안티 클리마쿠스에서는 자신을 매우 높은 수준의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기독교가 악마적인 것(demoniacs)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지성적인 방향에서 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므로 그의 개인적인 죄책은 자신을 이상(ideality) 과 혼동하는 것이다(이것이 그에게 악마적인 것이다). 이상에 대한 그의 묘사는 절대적으로 건전할 수 있으며, 나는 그에게 절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요하네스 클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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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는 비밀로, 영원한 행복은 고난으로, 믿음의 확신은 불확실성으로, 쉬움은 어려움으로, 진리는 부조리로 인식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은 혼란 속에 혼합될 것이다.[1] [1] Soren Kierkegaard,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 432.
사랑이 청결한 마음에서 나온다면, 요점은 사랑이 마음의 일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표현이다. 마음의 청결만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봄으로써만 마음이 청결해지기 때문이다. 즉, 양심의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사랑이 진실한 믿음에서 나온다면, 요점은 두 사람의 약속한 믿음에 대한 것이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믿음을 약속한 것에 대한 것이고 그들이 약속한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그분 앞에서 정직해야만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대한 오류에서 구원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진실한 믿음”은 양심의 관계를 위한 표현이다.―Pap. VIII2 B 36:2 n.d., 1847
외면에 있는 것과 내면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내면의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복음에서 용서받지 못한 종에 대하여 읽는다. 그의 주인은 모든 빚을 탕감해주었다.(마18:23-35) 그때 우리는 “그가 나가서 동료 한 사람을 만났다”라는 구절을 읽는다. 따라서 주인과 종사이에 일어난 첫 번째 부분은 내면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든 종이든, 집에서 살든 길에서 살든, 주인과 종 사이에 일어나는 것은 내면에서 발생한다. 오직 밖에서만 차별이 시작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무하고도 상관이 없다. 그것은 내면에 사는 분인 하나님과 상관할 뿐이다. 당신은 양심의 관계에서 당신 안에서 하..
NB9:42, Pap. X1 A 42 n.d., 1849 내가 크리스티안 8세와 두 번째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몇 달 후 소르겐프리에서였다.[i] 어떤 의미에서 그의 대화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말을 그만두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대화하는 것은 매우 활기찼다. 거의 여성처럼 활기차고 열광적인 노인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지성과 정신의 풍만함의 소유자였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위험 할 수 있다는 것을 즉시 알았으므로 조심스럽게 그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했다. 왕 앞에서 나는 방문하지 않는 구실로 내 기이함을 사용하는 것이 보기 흉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전술을 사용했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8세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에 상응하는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