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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24:153, Pap. X4 A 406 세상의 변화: 기독교의 변화=진리를 위한 증언: 비진리에 대항하는 증언 Verdens Forandring: Χstdoms Forandring; at vidne for Sandhed, at vidne mod Usandhed. 진리를 위해 증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거기에 자신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진리에 대항하는 증언하는 것은 너무 지나쳐서, 하나님을 유혹하는 것이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비진리가 와서 나에게 비진리를 행하도록 강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 나는 진리를 증거하며 저항할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지만 이 문제는 세상의 형태가 놀라운 변화를 겪지 않았는지 여부에 있다. 비진리가 자신이 권..
NB24:152, Pap. X4 A 405 단독자―대중 “대중, 군중은 비진리이다.”라는 명제는 한 사람에 의해서만 일관되게 주장하고 싸울 수 있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두 명만 있다고 해도,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이 원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두 명은 군중, 대중을 향한 숫자인 반면, 한 명은 숫자가 아니라 질적 범주이기 때문이다. “대중, 즉 군중은 비진리”라는 이 명제는 기독교의 명제이다. 이 명제를 위해 싸우지 않는 모든 세대, 즉 그러한 모든 세대에는 실제로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아마도 “많은” 또는 (risum teneatis!) “대중”이 있었다고 해도, 한 개인이 이를 행하기 원한다면, 이 명제를 주장해..
NB24:143, Pap. X4 A 396 욥기 이 책의 중요성은 우리 인간이 불행한 것을 죄책으로, 범죄로 간주함으로써 저지르는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기심은 이생에서 인간에게 일어날 수있는 일의 인상, 심각하고 화가 나는 인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난을 죄책으로 설명한다: 고난은 자신의 잘못이다. 오, 인간의 잔인함이여! 욥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정의를 얻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죄가 있기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논제로 그를 위로하는 대신 그를 괴롭히는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를 얻는 것이다.
NB24:141, Pap. X4 A 394, JP 3:2541 루터의 수도원 이탈 떠나라! 루터가 외친다. 금식 등의 이런 상상 속의 경건한 행위를 떠나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명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다. 하지만 조금 더 루터처럼 행동하라.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세속적인 직업이 기독교와 양립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극장의 배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큰 충돌이 잠 들어 있다. 다음으로, 그는 세속적인 직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한 시민의 예절이 그리스도인에게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면, 그는 세속적인 직업에서 기독교 윤리를 표현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하나, 둘, 셋(ein, zwei, drei)처럼 빨리 가..
NB11:23, Pap X1 A 318 《윤리적-종교적 소론의 순환》의 서문, 이 책은 더 작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은 1848년 이전에 쓰여졌다. 그건 그렇고, 이것은 무관심한 문제이며, 이 책이 시간과 모든 시간에 대한 진리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정도에 비례한 모든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 일부를 포함하고 있으며, 1848년 이전에 쓰여졌다는 것은 무관심한 문제이다. 혹은 1848년이라는 해가 모든 조건을 비인간적으로 바꾸어 이전에는 지혜였던 것이 이제는 난센스가 되어 버릴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그중에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1848년 이전에 쓰여졌든 그것은 여전히 무관심의 문제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
NB:160, Pap. VIII1 A 49 십중팔구, 모든 것을 줄줄이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아는 체하는 사람들(wiseacres)은 나의 기독교 강화에 속죄를 담고 있지 않다고 비난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떻게 산파술적인 방법으로 진행시켜 왔는지 나에게서 5년을 배웠더라면, 그들은 현명해졌고 아마도 그런 상태로 남아 있을 텐데 말이다. 처음의 것이 처음 나오고 그때 다음의 것이 다음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내가 큰 책에서 단편으로 발전시킨 모든 것들을 하나의 말로 혼합시켜 버렸다. 이리하여 언제나 각 작품에 그 책을 다음 책과 연결하는 하나의 가시(stinger)를 남겨 놓는다. 그러나 구경꾼과 어떤 목사들의 김빠짐(insipidness)은 신뢰할 수 없다. -JP V 5..
폭풍이 일어나는 중에 바다가 분노할 때, 하늘이 숨겨질 때, 바다와 하늘이 이런 뒤죽박죽 상태에서 하나로 혼합될 때, 이 드라마가 아무리 끔찍해도 우리는 바다가 청결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평온이 찾아와 그들이 구별된 후에야, 저 바다 위로 하늘이 아치를 높이 그릴 때, 바다가 그 하늘을 깊은 곳에서부터 반사할 때, 그 후에야 우리는 바다가 청결하다고 말한다. 분노한 폭풍에 의해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섞이는” 가운데 청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결은 구별(distinction) 속에 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영혼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영혼이 혼란스러운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거만하게도 선과 악의 구별을 어길 때, 그 때 영혼은 짜증나고 불결해진다. 그러나 하늘 가까이 닿은 숲과도 같..
340:14, Pap. VII1 A 143, 1846, JP: 1348. . . . .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은 불변하신다.” 속죄는 하나님이 변하셨다고 가르치는데, 이 모든 것은 검증을 통해 견딜 수 없는 비인간적인(anthropopathic) 표현이다. 즉, 하나님의 추상적 불변성에 대한 추상적 사고에 의해 인간은 자신을 변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 정확히 이것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라. 착각은 인간이 추상적으로 사고함으로써 하나님이 불변하신 것처럼 자신도 불별하게 하고 싶어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반대에 대한 속죄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속죄는 하나님은 불변하신 반면, 인간은 변한다고 가르친다. 혹은 죄로 인해 변화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불변하신다고 선포한다. 사실 모든 반대는 본질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