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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Pap. VIII2 B 31:24 n.d., 1847나의 독자, 이것은 단순히 ‘잔치’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말다툼[Ordstrid] 일까? 아니,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평등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논쟁[Strid]이다. 단지 자신의 차이의 장점에 따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는 교만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 또한 교만이다. 설령 우리가 비천하다고 부르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타락한 비밀주의와 회피적 교만으로 자신의 영혼을 손상시키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존재하고 그들의 잘못으로 고통받기를 원해야 한다.
Pap. VIII2 B 71:20 n.d., 1847나의 독자, 여기에 제시된 내용이 “잔치”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논쟁으로 보이는가? 기독교가 실제로 너무 세속적인 것에 깊이 빠져서 지방 서기나 구호 담당관처럼 음식이 전부라고 생각했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먹을 것을 주면, 이름이나 어떤 이름으로 행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가? 아, 기독교는 이러한 혐오와 불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기독교는 물론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의미에서 가장 부유 한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많이, 즉 똑같이 적게 줄 수 있다고 똑같이 믿는다. 다른 한편으로, 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잔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단어 사용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할..
JP III 2421 (Pap. X1 444) n.d., 1849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순교는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세리와 죄인들은 실제로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이 때문에 비난을 받고,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한다.보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즉, 고귀한 자들과 존경받는 자들, 유대로 명성을 얻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 세상은 이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상대적인 사랑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랑과 관련된 약간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그것을 사랑으로 간주하지 않고 마치 범죄인 것처럼 그것을 처벌함으로써 더욱 이익이 되지 않게 한다.
JP I 1013 (Pap. VIII2 B 31:22) n.d., 1847지상의 삶에서 또 다른 차이점, 즉 배운 사람과 평신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배운 사람이 오만하게 자신과 비교하여 다른 모든 사람이 무식하다고 주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타락이 더 숨겨지고 미묘할 뿐이지 여전히 사람 안에 머물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따라서 박식한 타락(learned corruption)은 지식이 있는 자와 무지한 자 사이에 여전히 심연의 틈이 존재하고 남아 있으며, 지식이 있는 자는 인간이고 다른 자는 풍요로운 숫자이며 존재[Tilværelse]의 사치이며 어느 정도는 토대(substratum)로서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비밀이다. 그러나 조심하라. 그들은 말한다. 이..
NB13:5, JP II 1393 (Pap. X2 A 72) n.d., 1849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같지 않다. 즉 사람들과 의 관계에서, 함께 오래 살수록, 서로를 더 많이 알수록, 더 친밀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반대이다. 하나님과 함께 오래 살수록 하나님은 더 무한해지고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아아, 어렸을 때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행복하게 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었을 때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간절히 애원하더라도 진정으로 노력하면 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꿈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지, 그 무한한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교육이며 소크라테스의 무지와 공통점이 있다. 무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로 끝난다!
NB2:199, JP I 1050 (Pap. VIII1 A 320) n.d., 1847누구나 위인, 위대한 사건 등과 동시대인이 되거나 동시대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동시대적으로 살아가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자기 자신과 동시대적이라는 것(따라서 미래도 기대도 과거도 아닌), 이것이 안식의 투명성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NB:206, JP IV 4596 (Pap. VIII1 A 96) n.d, 1847사람을 조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마10:17-18)더 고귀한 인격을 향한 모든 노력은 항상 오해나 질투로 인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동요하지 말라. 세상은 이상한 곳이다. 당신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당신을 방해하고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당신이 굴복한다면, 세상은 당신이 죽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결국, 굴복한 것은 그의 약점이었어.” 그러나 당신이 굴복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당신에게 분노할 것이지만 당신이 죽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결국 그가 옳았다.”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반대는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추도사(찬사)가 되고, 세상은 그대로 ..
JP IV 4597 (Pap. VIII¹ A 113) n.d, 1847 누가 치통이 생길 때, 세상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인 여러움을 겪을 때, 세상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남자의 아내가 죽을 때 세상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체포될 때, 세상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시고 세상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실 때 세상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도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박해와 죽음의 고난을 겪는 소명이 응답했을 때, 세상은 그 사도에 대하여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불쌍한 세상이다!!!